
#1 Supermarket 2026 리뷰
2026.7.30
스톡홀름 마지막 날, 슈퍼마켓 아트페어의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비르(Abir Boukhari)가 운영하는 전시 공간 Allartnow에 다녀왔다. 아비르는 오온이 2024 Swab Barcelona에 참여했을 때 처음 만난 인연으로, 올해 슈퍼마켓 아트페어 참여를 권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공간에 초대한 김에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국에서 공간의 근 4년 간의 전시와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그 활동들은 최근의 고민과 여러 지점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대화를 아비르의 경험을 쫓아 내가 품고 있던 질문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아비르는 2005년부터 시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Allartnow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역 예술가를 소개하고 연결하는 작은 활동이었지만, 이후 레지던시와 아트 스페이스로 확장되었다. 시리아의 첫번째 독립 공간으로 시작해 20년 가까이 활동을 지속해 왔다. 혼자 공간을 운영하게 된 이후에는 노마딕한 형태로 시리아의 안과밖을 오간 뒤, 2015년부터 스웨덴에 정착해 독립큐레이터로 살아왔다. 현재는 예술교육기관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Allartnow를 이어오고 있다. 스톡홀름으로 옮겨온 Allartnow는 시내 북쪽의 한적한 주택가 1층에 자리한다. 한 층을 두 공간으로 나누어 한쪽은 기획전을, 다른 쪽은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 공간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도 두 공간 모두 전시가 열려있었다.


Allartnow는 작지만, 알찬 공간으로 이곳이 스톡홀름의 예술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스톡홀름에는 교육기관, 미술관, 갤러리, 조직화된 예술 행사 등 다양한 제도-비제도적 예술 공간이 있다. Allartnow는 스스로를 중간(middle) 공간에 위치시킨다. 기관처럼 파트너를 찾고 협력할 수 있으면서도, 독립 공간처럼 유연하게 사람과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자 인프라스트럭처. 누군가와 무엇을 할 수 있는 미팅 포인트. 이것이 아비르가 지향하는 큐레토리얼 방법론이다. 전시를 꾸릴 때도 (단지 혹은 우선) 모임을 만든다. 사람들을 모아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관계망을 엮고, 돌본다. 그것이 시리아에서부터 아비르가 해온 일이다. 작가와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그것을 하는지 알아간다. 어느 순간 이 작업과 저 작업, 그리고 자신이 중요하게 느끼는 어떤 문제가 연결될 때 전시의 형태를 갖는다. 큐레이터란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에 가깝다고 한다.
아비르에게 예술은 메시지 전달하는 언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은 한 테이블에 앉히는 장치다. 전쟁, 이주, 난민과 같이 멍울진 문제를 다루는 ‘안전한’ 방식으로, 서로 섞이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함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장으로 작동시킨다. 아비르가 초대했던 전시*에서처럼 예술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나 디테일을 다른 이미지로 번역하거나 우회하여 다룬다. 그녀는 예술을 통해 어떠한 갈등이나 적대감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Allartnow에서는 대개 정치적인 사건이나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일련의 전시에서 계속해서 그러한 맥락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 안에서 예술과 정치가 어떤 관계성을 갖는지 물었다. 아비르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룰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정치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며. 이는 우리가 세상을 신경쓰기 때문인데,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결국 정치적인 주제를 전시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전시장 안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삶을 예술이나 연구안으로 옮기는 방식에 대해 떠올렸다.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며 느낀 걱정과 불편함도 그 때문이었다. 연구는 언제나 누군가의 삶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나는 나와 연구 대상 사이의 거리를 (어쩌면 과하게) 의식하며, 타인의 삶을 하나의 연구로 엮어내는 일 앞에서 오래 머뭇거렸다.
Photographed by Hyun Seungeui

그렇다면 삶은 어떻게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재현에 관해 이어가자, 아비르는 자신의 작업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설명했다. 작업을 시작할 때 누군가를 여성이나 난민이라는 정체성으로 먼저 규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마다 삶의 조건과 기억은 다르고, 그 경험은 예술가든 큐레이터든 자연스럽게 작업 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두거나 특정한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경험을 정직하게 다루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 역시 스웨덴으로 이주하기 전에는 난민이나 강제 이주 등의 이야기를 작업의 주제로 삼을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으로부터의 발화가 시작되면서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그 경험을 어떻게 얘기할지뿐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까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아비르는 시리아와 스웨덴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이해시키는 다리의 역할을 자처한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일 역시 자신의 몫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AllArtNow에서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서로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을 연결하고, 교환 레지던시를 통해 다른 환경에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크고 선명한 목소리가 쉽게 주목받는 시대에, 아비르와의 대화는 의외로 담백했다. 자기 경험에서 출발해 정직하게 말하기. 중요한 건 거대한 주제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기보다, 자기 경험을 신뢰하고, 말하고 싶다는 감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르는 동사적인 예술, 그러니까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예술을 어떻게 계속해 나갈지 고민하던 요즘, 아비르의 활동은 내가 참고하고 싶은 하나의 방향으로 남을 것 같다.
* 4월에는 투쟁, 권력, 기억, 회복력 삶의 경험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투쟁과 권력, 기억, 회복력의 이야기를 풀어낸 여성 작가들의 전시, ONE ROOM, MANY STORIES(2026)가 진행 중이었다. https://www.allartnow.com/2026.ph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