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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 기행

2025년 10월

최형준(b.1997)은 사생과 설치를 바탕으로 자연 풍경의 조형적 변화를 탐구하며, 현장에서 감지되는 기후와 움직임을 회화적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지와 먹의 물성을 탐구하고, 배접과 임모 등 전통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한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야외 설치형 이젤>(2023, 탈영역우정국), <LAB 1.0>(2025, 양주시립미술창작센터)이 있으며, <시시각각>(2024, 우석갤러리), <On boarding>(2023, 성곡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사생은 보고 그리는 것으로,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미디어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해당 장소로부터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과 소리, 비를 맞는 차가운 감각, 멀리 보이는 풍경의 광활함은 현장에서 느끼는 것만큼 감동적이지는 않다. 나는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리고 또 그려서 화면이 빼곡하게 찰 때까지 표현하며, 화면 안에서 많은 것들을 사실적으로 담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비가 오는 날 그림을 그릴 때에는 자연스럽게 처마 밑에 자리를 잡게 되거나, 나무에 앉은 새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그리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모습들을 보다 빠른 붓질로 담게 된다. 그런 현장에서의 환경들은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그렇기에 사생을 하는 내내 그림은 끝없이 변화한다. 아직 경험이 적은 탓인지, 선을 아끼는 방법을 잘 몰라 나의 그림은 결국 화면 가득 선과 점이 차서 더 그리기 어려워질 때 마무리되곤 한다.

 

양주의 <독바위 공원>은 이러한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오랜 기간 사생을 연습했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고, 여러 모로 양주의 풍경을 담았기에 정이 든 공간에 함께하는 작가들을 초대하게 되어 기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작가의 사생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박경진 작가는 곧장 시야에서 사라져 가파른 독바위를 올라 그림을 그렸고, 내려와서는 빗방울이 주륵 주륵 떨어지는 나무 밑에서 그림을 흘러내리듯 그렸다. 작품에 대한 인상과 달리 작업은 작가님의 걸음걸이 만큼이나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고, 그래서인지 더 생생한 화면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진희란 작가는 공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얇은 갱지에 그려서인지, 혹은 건식 재료를 사용해서인지 우산을 쓰고 다니며 길에 서서 그림을 그렸다. 이후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림을 통해 공원을 오르는 전체적인 동선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리는 비 속에서 어정쩡하게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다른 날을 잡아 하루 종일 그려 한 풍경 한 장을 완성했다. 사생 그림은 과정의 결과물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이후 완성된 그림을 보면 그 과정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획의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10월 전시에서는 세 작가가 풍경을 그려내는 방식과, 그림 너머에 있는 과정들을 관객들이 상상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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