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Supermarket 2026 리뷰
김세연은 예술과 인류학을 공부하며, 미술 안팎을 가로지르는 프로젝트를 만든다. 참여의 감각이 활성화되는 현장을 좋아한다. 석사 연구에서는 제주도 해녀 마을을 현지조사하며, 몸으로 전승되는 해녀 문화가 해녀와 다이버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변형·전유되며 젊은 여성들에게 이어지는지를 고찰하였다.
<슈퍼마켓 아트페어를 위한 기지 안내서>
스톡홀름 남부, 옛 육류 산업지구의 4월에는 세계 곳곳 예술가의 캐리어가 모인다. 자신을 똑 닮은 물건을 잔뜩 몸에 이고 도착한 예술가는 배정받은 자리에 이것들을 하나둘 풀어놓는다. 작품, 진, 엽서, 오브제, 카드가 쌓이며 저마다의 기지로 변해간다. 이 기지는 나를 보여주고, 너를 궁금해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기지의 본체는 Supermarket Independent Art Fair(이하 슈퍼마켓)다. 예술가에 의한, 예술가로부터 비롯된 활동에 주목하는 독립적인 아트페어다. 2006년, 북유럽 상업 아트페어인 Market Art Fair에 대한 대안으로 Minimarket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되었다. 이듬해 Supermarket으로 이름을 바꾸며 아티스트런을 핵심 정체성으로 내세웠고, 11개 팀으로 출발한 작은 행사는 올해 63개 팀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했다.
슈퍼마켓이 지향하는 ‘아티스트런’은 제도 바깥에서 예술가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운영하는 실천적인 삶의 양식에 가깝다. 갤러리와 작가의 인지도, 작품 판매 가능성보다 팀의 지속성과 자기조직력을 기준으로 부스 참여자를 선정한다. 26년도 페어 도록의 표현처럼 슈퍼마켓이 주목하는 바는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도 활동의 기반을 직접 만드는 태도 즉, “고집스러운 지속성(stubbornly persistent)”으로 현장에서는 이러한 성격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DIY하며 만들어가는 독특한 흐름을 (소개를 넘어) 지지한다. 나는 자생해온 이들에 대한 응원과 존경을 아트페어의 주요 출발점으로 읽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슈퍼마켓의 주제는 ‘Great Gala’였다. 전시장에는 붓으로 춤추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예술가들의 만남을 축하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다. 우리는 마치 브리저튼의 무도회에 입장한 것처럼 가면을 받아 쓰고 광장에 모였다. 곧 가면의 종류에 따라 조를 나누어 부스 투어가 시작됐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예상했던 페어와 실제 슈퍼마켓 사이의 간극을 느꼈다. 사람들은 오온을 하나의 콜렉티브로 여기며 팀으로서의 활동을 먼저 물었다. 어떻게 팀이 결성되었는지, 공간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더 나아가 한국의 지원사업은 어떤 구조인지까지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슈퍼마켓은 미술 시장이 아니라 각자가 예술을 지속하기 위해 구축해 온 구조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각각의 부스는 매체도 주제도 보여주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부스는 전시 기간 내내 퍼포먼스가 열리는 ‘퍼포먼스의 집’으로 구성되거나 어떤 팀은 이동형 프로젝트로 참여해 전시장을 잠시 점유했다. 도시 외곽에서 수십 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스튜디오부터, 스무 명의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발표하며 다음 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갤러리까지. 많은 공간은 개인의 비전보다 공동의 필요에서 출발한 아티스트런스페이스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작가, 큐레이터, 운영자로 구분하기보다 그 역할들을 유연하게 포식하는 방식으로 소개했다. 슈퍼마켓의 예술은 특정한 문법으로 정돈되기보다 각자가 왜 이 공간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전면에 드러났다.
살롱 문화를 계승한 모임으로 슈퍼마켓을 바라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끊임없이 이어지는 프로그램도 이해되기 시작한다. 퍼포먼스장에서는 누가 마이크를 잡고 선언을 하거나 패널 토크가 열리고, 코스튬을 입은 퍼포머는 수시로 부스 사이를 활보한다. 작은 미팅룸에서는 한 시간 단위로 새로운 미팅이 계속된다. 이렇게 교류 중심의 만남은 부차적인 기능이 아니라 페어를 움직이는 핵심 구조다. 네 페이지 양면으로 빽빽하게 채운 프로그램 타임테이블에서 하나쯤은 맘에 드는 것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참여한 66팀을 어떻게든 한 번씩 마주치게 하려는 강한 의지가 곳곳에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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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참여한 <Networking Residencies> 미팅에는 예술가 주도의 레지던시를 운영하거나 자신의 공간을 레지던시로 활용하고 싶거나 언젠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왔다. 이번 미팅의 목적은 레지던시 운영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털어놓고, 자신의 경험과 팁을 개방하고, 적은 힘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공간 운영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원금 제도로 화제가 옮겨갔다.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기금 밭 밖의 푸석한 땅에서 어떻게 머물고 있는지 먼저 묻는 것을 보니, 제도 바깥에 있다고 해서 그 시스템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우회했고, 버텼는지 실패와 시행착오까지 이야기하며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데에는 지리적 조건도 크게 작용한다고 느꼈다. 유럽은 국가 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고, 이동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트래블 그랜트와 국제 교류 예산이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국가의 공간을 방문하고, 관계를 이어 나가는 일이 실현 가능한 옵션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페어 마지막 날, 라운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Indecis의 친구는 오후에 팀원이 케이크를 나누는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라며 시작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 구는 다급히 우리 부스로 달려와 곧 한다며 손짓했다. 우리는 함께 뛰어갔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부스 앞에 모여 케이크를 받아 동료들과 나눠 먹었다. 요거트맛의 비건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케이크 나눔 퍼포먼스는 슈퍼마켓의 관계 쌓는 방식과 닮아있었다. 슈퍼마켓에서는 잠깐의 인사가 아니라 자기 공간을 내어주고, 음식을 나누고, 미래의 만남을 약속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나는 케이크의 맛을 기억하는 만큼 이 팀도 오래 기억할 것이고, 언젠가 함께할 일을 만들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슈퍼마켓 아트페어는 미술 시장이 아니라 봄캠프였던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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